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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다드림 댓글 0건 조회 3,206회 작성일 07-07-28 00:13

본문

K. Barth의 생애와 중요한 사건.

 1. 칼 바르트의 생애
    ▶ 1886년 출생 ~스위스 바젤에서
      1904 ~1911 : 신학수업 기간 --전도사(제네바)
      초기: 베른(Bern), 후기 : 베를린에서 수업(궁켈, 하르낙의 수업을 들음)
      튀빙겐에서 Schlatter(보수적)로부터 배움.
        (아버지가 보수적인 사람이어서 바르트에게 보수적 신학을 배우길 원해서 튀빙겐으로 권유, 바르트는 숨이 막혀 못 견          디고.....)
      Marburg에서 공부한 후 졸업. →자유주의 신학자 헤르만을 만남(수업 시간마다 감격, 눈물까지 흘릴정도 심히)
        "증명되어지는 신은 신이 아니다."라는 명제←칸트영향(인간성, 자유성 배움)
      1909년, 제네바 개혁교회 전도사.
   
    ▶ 1911 ~ 1921년, Safenwil에서 목사 (이시기는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이 때만 하더라도 그는 철저한 자유주의자였다.)
      * 1918~로마서 강해 완성, 1919년 출판, 제 1 판.
      * Tambach에서 "사회 속의 예수 그리스도" 라는 강연- 이 강연은 종교사회주의자들이 주최했었다.
        → 사람들에게 알려짐.
      * 1921년 쾨팅겐 대학 교수.
   
    ▶ 1921~30년, 괴팅겐, 뮌스터 교수 시절.
      * 괴팅겐 대학의 교수가 된 후 『Zwixchen den Zeiten』(시간들 사이에)라는 잡지발간
        → 트루나이젠, 고가르텐과 같이 만듬, 이 잡지로 변증법적 신학자로 불려짐.
      *1925년 뮌스터 대학으로 옮김 
     
    ▶ 1930~35년, 히틀러와의 투쟁기(초기, 히틀러 대항에 불붙인 사람이 바르트다)
      * 1930년 본 대학으로 교수자리 옮김
      * 본격적으로 히틀러와 투쟁 위의 잡지는 중단되고, "오늘의 신학적 실존"이라는 잡지 발간
          → 히틀러와 투쟁
      * 1934, 5, 30~31 『Barmen 신학선언』발표됨.←고백교회 신학선언(칼바르트가 작성)
                          Bohn 대학 교수직에서 해직당함.
      *자기 고향인 바젤로 돌아감. -이 시기, 히틀러의 강권정치 강해짐.
        cf) 이때부터 고백교회운동의 신학적 지도자로서 본회퍼가 등장하기 시작함
   
    ▶ 1935~1962년, 바젤(Basel) 대학 교수 - 바르트 신학의 완숙기.『교회교의학』저술
        1962년, 은퇴.
        1968. 12. 10. 사망
   
 
  2. 중요한 사건

    1) 1915년 스위스 사회 민주당에 가입
              자펜빌의 붉은 목사라는 별명을 듣게됨 -- 그는 사회주의자인가?가 중요한 신학적 문제로 대두 (1970년)

    2) 1923년, 베를린의 하르낙 교수와 논쟁벌임
        쾨팅겐 대학 교수 시절임, 하르낙은 헤르만과 독일 신학의 최대의 원로로 있었음.
        이 논쟁으로 칼 바르트가 유명해짐.
        1920년 『성서적 질문. 관점. 조망』이라는 강연을 함, 하르낙이 이것을 읽고 자극 받음.
        1923년, 하르낙이 『신학하는 자 중에 학문적 신학을 조소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15개의 질문』이라는 문서를 공개적                    으로 발표
        바르트 - 신학의 과제는 설교다. 역사 비판학의 한계 강조.
                反 하르낙 -- 신학교 교직을 설교직으로 바꾸는 자다.
        바르트 - 교회의 신학자: 신학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신학자.
        하르낙 -- 아카데믹한 신학자: 신학함에 있어 어떤 전제도 있어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이전에 그 예수가 어떠했는가를 알아야 함. 
                    (역사적 예수의 모습) 그렇지 않은 신학자는 교회에 아첨하는 신학자다.
                    -- "우리가 설교하는 예수와 역사적 예수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

    3) 나찌 히틀러와의 투쟁.
        1934년 바르멘 신학선언 기초 →독일 고백교회의 신학적 아버지가 됨,
            칼바르트의 신학이 독일 교회에 영향끼치며, 그이 신학적 권위가 높아짐
        골비쳐가 이시기에 그의 조교였음. 바르트와 함께 해직당함, 이후 계속 히틀러에 대항.
            나치 수용소에 갇힘. 후에,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가 됨
              -반핵평화운동에 앞장섬
        골비쳐, 바르크 바르트(박순경교수가 영향받음)등이 바르트 신학을 좌파적으로 해석.
        1938년, 체코 프라하 신학자 로마트카에게 나찌에 저항할 것을 요구하는 편지 보냄.
              중간에 나치에게 빼앗겨 나치 기관지에 실리는 등 문제 발생.
        현실에 민감했던, 현실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해석하려 했던 역사적 문제에 민감했던 신학자.
              나의 신학은 전체가 구체적으로 표현했던 안했던 간에 정치적 문제에 민감했다."
        신학은 가장 남성다운 학문 - 신학을 안했다면, 정치했을 것임.
     
    4) 1935~1962년 교회 교의학 출판 (9,000페이지): 말씀, 신, 창조, 화해, 구원 (종말론)
        *kirschbaum 이라는 여비서가 바르트를 도왔기에 가능, 1924년부터 알게됨. 1930년부터 도와줌, 칼바르트 보다 먼저 죽          었다. 그 뒤 바르트의 글이 나오지 않음.
   
    5) 바르트가 사랑했던 사람.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사진, 유명한 음악가 모짜르트의 사진이 그의 방에(서재) 걸려있음
        바르트 신학의 핵심 :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의 은총 깨달음.
            "알프스의 산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는 것이 나의 신학이다."
          * 9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교회 교의학은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는 찬양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 하나님 은총의 승리가 바르트의 신학이다.
          * H.Vogel: "(하나님의 은총에 기인된)웃는 바르트"라는 제목으로 바르트 논문집의 한 단원을 정함
        모짜르트의 음악이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함
          * "모짜르트 음악에서 나는 자유와 희열을 느꼈다"
          * 만년에, 모짜르트에 관한 책도 씀.
          *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의 칭찬받는 천사는 바하의 음악 아닌, 모짜르트의 음악을 연주하는 천사일 것이다."
          * 나는 카톨릭 신자가 되기는 원치 않지만 적어도 14일 동안 교황이 되어 모짜르트 음악을 축복해 주고 싶다.
 
    6) 칼 바르트의 신학은 변천하고 있었다.
        신론 중심으로 6번의 신학변천이 있음 --김명용 교수 학위 논문
            초기와 후기신학이 다름, 분명히 시기 구별을 해야 함.
        바르트 자신의 신학과 관계가 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대전제임
          나의 모든 업적은 물거품 같은 것이라고 생각.
   
    7) 칼 바르트의 적 : 그의 일생에 3부류의 적이 있었음.
        문화기독교*(19c, 자유주의) --인간적인 것을 신적인 영광으로 옷입힌 것임.
        경건주의자와 율법주의자.
          * 바르트는 경건주의의 영향 받으며 삶--경건주의 왕국지역에서 자람→경건주의 비판
            : 경건주의의 지옥, 경건주의는 사탄을 만든다고 함.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이들은 롬 7장에 스스로 빠져 있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의를 이루려고 하나 이루지 못함.
          * 바르트의 신학 : 은총의 신학 --"나의 신학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하는 사람은 100%, 심술사나 율법주의자다"라고                              말함
          * 자학, 비판, 용서없는 경건, 율법주의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율법주의자.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 못하는 율법주의자.
          * 진정한 경건은 율법주의의 올무에 매여있지 않고 사랑하는 것에 있다.(자비, 사랑, 긍휼이 경건의 핵심이다.)
          * 율법주의자 - 용서를 알지 못함←하나님의 비판의 대상이 되는 자.
                          (약 2: 13 긍휼없는 심판, 약 1: 27 고아, 과부를 돌아봄) 
          * 하나님의 은총을 헛되이 하는 자들이라고 비난.
        로마 카톨릭
          * 교황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므로 -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교황의 영은 한 지붕 아래 동거할 수 없다.
              ←교황이 적그리스도의 역할을 하게됨
          *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중요하게 여김 →교황에 반대로 나타남
              : 개혁교회 기본정신이 되기도 함.
          * 전기: 카톨릭을 적그리스도의 집단으로 봄.
              그러나 1962~65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초청을 받아 교황과 만남,
              바르트의 생각이 달라짐 →로마 카톨릭 새로운 카톨릭으로 출발. ←교회는 적그리스도는 아니다"라고 말함.
          : 카톨릭 신학에 대한 오해, 부정확한 이해가 바르트에게 있었음 →카톨릭 신학자들이 바르트를 연구한 후 얻은 결              론. 
          :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전적으로 교회를 지배되어야 한다는 기본정신 때문에 교황제도를 거부하고, 카톨릭과의              관계도 좋지 못했음.

<칼 바르트1 : 바르트와 자유주의 신학>
I 서론
。 19세기 신학의 방법론을 정반대로 뒤집어 놓음, 인간의 경험이나 종교적 의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음
II 생애와 저작
。 생애
a. 1886년 5월 10일 스위스 바젤에서 출생하여 개혁 교회적인 신앙 환경 속에서 성장
b. 1906년 바르트는 베를린 대학에서 카프탄, 궁겔, 하르낙 교수 밑에서 공부
c. 1907년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튀빙겐 대학으로 옮겨 보수 신학과 슐라터에게서 배움
d. 1908년 평소 소원하던 마르 부르크 대학으로 다시 바꿔 헤르반과 하이트 윌러의 강의를 청강, 󰡐기독교 세계󰡑의 편집일 도움
e. 1911년부터 10년동안 스위스의 작은 공업도시 자펜빌에서 목회, 사회정의, 저임금, 노동자, 근로 조건 등 사회 문제의 관심
f. 1914년 1차 대전이 일어나자 독인 지성인 93명이 독일 황제 카이젤 필헬름 2세의 전쟁 정책이 기독교 문명의 방어에 필요한 것으로 간주, 이를 지지하는 성명서 발표
。 자유주의적 기독교와 역사에 대한 외경이 이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자유주의 신학으로는 청중들의 반응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음과 함께 키에르케고르와 오버베크의 철학 그리고 도스도예브스키의 소설 등의 영향으로 바르트는 신약성서 특히 바울 서신을 깊이 연구
g.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그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했으며 복음 교회를 장악하려는 나찌의 시도에 반대하여 고백 교회운동 전개
h. 1935년 본 대학 교수직에서 해임되었으며 독일에서 가르치는 것과 도서 출판이 금지됨, 스위스로 돌아와 1968년 사망할 때까지 바젤 대학교수로 활동하여 여생을 보냄
。 저서
a. 로마서 주석 -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 대신 인간, 인간의 신앙, 경건 감정 및 문화 등에 중심을 두는 자유주의 신학에 반기를 든 것
b. 시간들 사이에 -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고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성경적 신학을 주창하려는 변증법직 신학 운동의 기관지
c. 교의학 개요, 19세기 프로테스탄트 신학, 교회교의학 등 저술
III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 중심적 신앙
。 로마서 주석 - 하나님의 타자성과 인간적 노력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강조
。 교회 교의학 -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실재성이 강조
1. 하나님 말씀의 신학
。 모든 기독교의 선포 행위는 성서를 파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 자신이 현실적 상황과 신약 성서의 유기적 관계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성서에 대한 지식이 부족이라는 것을 발견
。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의 과제로 간주하고 설교자는 이 말씀을 선포하고 교수는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
。 교회 교의학
a. 계시된 말씀 - 예수 그리스도를 말함
b. 쓰여진 말씀 - 하나니므이 계시에 대한 인간의 기록
c. 선포된 말씀 -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설교를 의미
。 자유주의 신학 - 기독교적 경건을 신학의 토대로 간주한 대 반해,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의 토대로 간주
2.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
。 신론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삼중의 양식으로 알려진다는 것을 논증
。 화해론의 주체 - 심파노가 자비, 유기와 선택이 예수 안에서 일어난 것으로 설명
。 그리스도 중심적인 선택론 -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하나님인 동시에 선택된 인간존재로서 기술
IV 바르트와 슐라이에르마허
。 1914년 빌헬름 2세의 전쟁정책을 지지하는 독일 지성인들의 선언서
a. 전체 신학이 슐라이에르마허에 토대를 두었으며 결정적으로 영향받고 있다고 판단
b. 바르트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왜곡󰡓을 슐라이에르마허의 역사적 의의로 간주
。 바르트와 슐라이에르마허의 결정적인 차이와 논쟁은 무엇인가?
a. 슐라이에르마허 -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 감정을 신앙의 본질로 정의, 신학의 출발점과 중심 대상으로 삼음
b. 바르트 - 신앙을 하나님 자신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해석,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신학을 전개
V 결론
。 19세기 자유주의 신학과 정반대의 입장, 인간의 경험이나 종교의식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데 반해,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음
a.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인간과 인간의 경험을 신학의 중심으로 삼았던 신학의 흐름에 반기를 들고 이를 차단하려 한 것
b.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신학의 중심으로 삼은 것

<칼 바르트2 : 바르트와 에밀 브룬너>
I 서론
。 신정통주의 - 위기의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과 명령 아래 놓여 있다는 것과 계시를 이해하려면 심판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함을 강조
a. 양자 사이의 무한한 차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변증법적 형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변증법적 신학
b.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이해 사이에 관계를 긍정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긍정과 부정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파악
。 칼 바르트와 에밀 브룬너의 견해 차이는 일반계시와 자연신학을 인정, 불인정의 차이
II 바르트와 브룬너
。 공통점, 유사점
a. 스위스 출신의 개신교 신학자
b. 바르트와 브룬너는 그들의 신학과 경력에 있어서 공통점을 지님
。 로마서 주석 - 슐라이에르마허로부터 시작되는 자유주의 신학 전통에 대한 반대 선언서
a) 1921년 독일 괴팅겐 대학 교수로 초빙받게 됨
b) 1935년 나치스 정권에 의해 교수직에서 해직될 때까지 본 대학 교수로 활동
c) 1935년 독일로부터 추방된 후 고국 스위스로 돌아와 1968년 죽을 때까지 바젤 대학 교수로 활동
。 신비주의와 말씀 -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경험에 근거한 모든 신학을 의문시
c. 바르트와 브룬너는 공통적인 학문적 배경을 지님
。 바르트
a) 개혁 교회적인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빠른 대학 시절부터 개혁신학을 그의 신학의 근본 토대로 수용
b) 칸트의 이론 철하과 실전 철학을 공부했으며 키에르케고르의 변증법을 그의 신학 전개 방법으로 이용
。 브룬너
a) 지식과 신앙에 관한 저술에서는 칸트의 영향
b) 종교적인 경험에 대한 강조에서는 키에르케고르의 영향
c) 하나님의 초월성과 사회 및 정치적 활동에 대한 필요성 강조에서는 루터와 칼빈의 영향
d. 바르트와 브룬너의 신학을 공통적인 특색을 지님
a) 바르트 신학의 본질은 절대적인 그리스도 중심주의
b) 브룬너 역시 바르트처럼 하나님은 오직 계시에 의해 알려지며,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임 강조
。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 출판 이후, 변증법적 신학으로 불리는 새로운 신학 운동을 주도, 󰡐시간들 사이에서󰡑를 창간하여 그들의 신학을 전개
。 변증법적 신학 -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을 그 출발점으로 삼음
a.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을 인간으로 대치했으며 신학을 인간학으로 변경
b. 변증법적 신학은 이러한 평가를 토대로 자유주의 신학의 방법론을 정반대로 뒤집어 놓음
。 브룬너의 󰡐자연과 은총󰡑은 신학에서 그리스도 중심을 강조하면서도 바르트의 절대적이며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주의 거부
III 일반 계시와 자연신학
。 계시 - 󰡒아포칼리시스󰡓, 󰡒파네로시스󰡓로 표현된 신약성서의 개념을 결합한 것
。 로마 카톨릭 교회, 개신교 정통주의 - 계시를 일반적인 계시 또는 자연적인 계시, 특별계시 혹은 초자연적 계시로 분류
a. 일반꼐시 - 하나님의 때와 장소 및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그 자신을 나타내는 것
b. 특별계시 - 하나님이 특정한 때, 특정한 사람에게 자신에 대한 특별한 것을 나타내는 것
。 일반 계시는 자연, 역사 및 인간 존재를 통해 나타남
。 특별계시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 의미
* 자연신학 - 자연, 역사, 인간의 양심을 통해 하나님의 진정한 지식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
a. 객관적이고 보편 타당한 일반적인 계시가 있다는 것
b. 인간은 자연 세계로부터 지각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
c. 인간 정신과 창조물 사이에는 일치점이 있다는 것
。 기독교안들에게 있는 두 가지 문제점
a. 자연 신학과 계시 신학의 관계성과 인간의 책임성
b. 인간은 이성적 추론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다고 봄
。 존재론적 증명 - 하나님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
。 우주론적 증명 - 자연 세계에 대한 관찰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
。 흄 -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적인 관계성을 부정함으로서 우주론적 증명을 비판
。 칸트 - 순수이성 비판
a. 순수 이성으로 하나님의 존재, 인간 영혼의 불멸, 자유론 증명하거나 인식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형이상학 거부
b.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합리적인 증명을 비판
IV 자연신학 논쟁
。 브룬너 - 󰡐자연과 은총󰡑에서 자신이 이해하고 교정하기 원한 자연 신학에 관한 바르트의 견해를 명제 형식으로 언급, 반명제 형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제시
a.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
b. 일반 계시가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시도는 철저히 거부되어야 함
c. 창조와 보존의 은초은 없음
d. 보존을 위한 하나님의 제도나 법당은 없음
e.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접촉점은 없음
f. 새로운 창조는 결코 옛 창조의 완성이 아님
。 바르트의 견해에 반대되는 여섯 개의 명제
a.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형식적 형상과 실질적 형상으로 구분
b.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 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음
c. 하나님의 보존 은총이 있음
d. 보존을 위한 제도가 존재
e. 인간에게는 구속 은총에 대한 접촉점이 있음
f. 새 창조는 옛 창조의 완성
* 하나님의 일반 계시가 있다는 것과 자연 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
。 바르트 - 󰡐아니요󰡑d[서 브룬너의 반 명제들을 조목조목 반박
a. 브룬너는 하나님의 형식적 형상은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음
b. 브룬너는 세계가 하나님의 창조로서 인간에게 알려진다고 말함
c. 브룬너는 보존 은총이 있다고 주장
d. 스룬너는 창조 질서와 제도가 잇다고 주장
e. 브룬너는 구속의 은총을 위한 접촉점, 즉 계시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
f. 브룬너는 계시가 없어도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을 알고 그의 뜻을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
* 교의학 - 창조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수많은 작은 빛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 인정
V 결론
a. 하나님의 계시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서 일반 계시와 자연 신학의 가능성 부정
b. 일반 계시를 인정하는 브룬너의 견해가 그것을 부정하는 바르트의 견해보다 더 성서적이며 종교 개혁자들의 신학과 일치
c. 성경 저자들이 일반 계시가 제공하는 증거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목해야 함
d. 인간의 이성에 의해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자연신학은 인정될 수 없음

칼 바르트는 과연‘자연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나?
I 들어가는 말
。 칼 바르트의 신학 - 칸트의 비판에서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과 인간, 영원한 시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강조했던 키에르케고르로부터 중요한 변증법적 방법을 받아 들여서, 하나님의 초월성 강조, 신학과 문화, 계시와 종교 사이를 철저한 분리 주장
。 인간과 인간의 신앙, 인간의 경건, 인간의 종교, 인간의 문화, 인간의 정싱, 인간의 감정을 중심에 둔 그 당시의 신학을 비판하기 위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강조
。 교회 교의학 - 유일한 생명의 빛 된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창조 세계의 빛들’에 대하여 논의
。 화해론 제3권 - 계시 신학의 관점에서 그토록 거부했던 자연신학의 가능성과 실체를 새롭게 인정하고 있다고 천명
II 인본주의 신학에 대립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
。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 “나의 입장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a. 1931년에 출판된 영국 멘러 베리의 안셀름의 신 증명에 관한 책
b. 기독교 교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진술에서 우리에게 말해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
。 하나님의 선택에 관한 교리 -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물게 하시기를 기뻐하심”
a.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분리와 단점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언어는 결코 하나님을 가리킬 수 업삳고 했던 과격한 변증법적 신학을 넘어설 수 있게 됨
b. 좀 더 나은 방식으로 하나님은 또한 인간성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으 하나님이라는 방향으로 발전시킨 것
。 화해론 - “하나님의 자기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신학의 기초가 되는 본문”
a.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종으로 낮추신 참 하나님이고 그로서 그는 화해하시는 하나님
b. 예수 그리스도는 참 인간
c.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
。 로마서 강해 -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a. 바르트의 신학의 전체적인 발전과정 속에서 그의 사상의 깊이와 복잡성
b. 반대나 모순으로 나누어지는 요소들을 심오한 총일성 안에서 조화
III 칼 바르트와 자연 신학
1. 1934년의 바르맨 신학 선언
。 신학적 공리로서의 제1계명
a. 계시의 개념을 인간의 삼론, 질서, 국가, 민족 등과 같은 개념들과 연결시키는 모든 신학적 시도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신들’을 섬기려는 위험을 탐지
b. 기독교인들에게 모든 종류의 자연신학과 결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할 것을 호소
。 바르멘 신학선언의 본문 - 신앙 고백의 기초 위에서 자연신학에 반대한 복음주의 교회의 첫 번째 증거
a.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신뢰하고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라고 표현
b. 그것을 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또 다른 교회의 선포의 원천이 있을 수 있다고 하고 교리를 그릇된 교리로서 배격
c. 진리를 탄성하고 이 과오를 거부하고 일이 “독일 복음주의 교회의 불가결한 신학적 토대”라고 진술
3. 1937년의 기포드 강연
。 기포드 경의 유지에 따라서 ‘자연신학’에 대한 지식을 조장하고 널리 유포하는 데 목적이 있었음
* 종교 개혁자들의 가르침 - 그들이 교회와 인간의 rdnjs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와 그 말씀에 대한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자 하는 데서 이루어짐
4. 교회 교의학
。 교회 교의학
a. ‘하나님의 말씀론’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였기 때문
b. 자연신학이 불가능한 것을 기독교의 계시 안에서 주어진 것으로서으 하나님의 본성, 즉 십자가에 달린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바로 그 계시라는 것은 결코 다른 곳에서는 알려질 수 없기 때문
* 하나님은 오직 그의 계시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는 독자성 주장
。 화해론 - 자연신학 거부
a. 화해에서 성취된 계약이 중심언제, 그것으로부터 주변적인 것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또 보아야 함
b. 화해 사건은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의 근원과 내용일 뿐만 아니라 신학의 중심
c.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나님과 세계, 인간을 보려는 wkdustlsgkrdms 화해론에서 철저히 배제됨
。 그리스도의 화해의 사역 - 여원 전에 오로지 하나님으로만 계시기를 원하지 않고, 역시 영원 전에 인간의 본성을 취하고 지니고 간직하고자 하신 것
a.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의 본성과 이 연합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b. 교회와 교회의 선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계시에 붙잡힌 바 될 때마다, 자연신학은 치명적인 환상으로 여겨짐
IV 나가는 말
。 자연신학을 반대했던 이유
a. 자연신학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은총을 향한 인간의 개방성”을 말하기 때문
b. 히틀러나 나치 체계를 신성시했던 “독일 기독교인”의 기초를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
。 하나님의 인간성
a. 화해론에서 하나님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자연신학의 가능성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화해사역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는 것
b. 하나님의 신성에서 하나님의 인간성으로 갑작스럽게 강조점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1931년 이후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인간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것
。 에수 그리스도 안에 일어나 두 가지 운동의 통일성
a. 하나님은 그의 신적 본질 안에서 사람의 본질에 참여
b. 예수의 인간적 본질을 아버지와 성령과 동등한 그의 신적인 본질에 참여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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